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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한 시어머니와 유난스러운 며느리 (1화)
    연재글 2023. 12. 14. 16:41

    시어머니는 연기자?

     

     

    나는 40세에 결혼해 10년간 이상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10년간 내가 겪은 그녀의 연기는 어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인네이고 중증환자이기에 가족으로부터 돌봄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 격동기에 서울 유명 대학까지 나온 그 시대 엘리트로서 격조와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남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늘 ‘타인의 눈’이라는 족쇄 안에 갇혀 전전긍긍해야만 하셨다.

     

    신혼 초 어머니는 늘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우리 부부를 보시면 눈물을 보이셨다.

     

    “너희 불쌍해서 어떻게 하니?”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하는 널 보니 내 가슴이 찢어진다’”

    “에미 네가 그렇게 몸이 아픈데도 일을 하러 나가는 그 얼굴을 보니 마음이 슬프구나.”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어.”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아가를 두고 일터로 떠나는 너의 뒷모습은.....”

     

     

    아침에 일하러 나가는 나를 붙잡고 1970년대 드라마 신파조 대사로 어울림 직한 말씀들을 읊으신 후 반드시 흐느껴 우신다. 보여주기 식 ‘측은지심’이라고 할까, 매일 아침 출근길에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마음이 따뜻하고 감정이 매우 풍부하신 편이어서 ‘나를 많이 공감해 주고 걱정해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베테랑 연기자처럼 순식간에 분출되는 눈물과 주옥같은 대사를 바람처럼 치시는 걸 보면 이건 진심이 아니라 하나의 요식행위 같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말씀 속에 영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익숙한 대사를 암기하고 내뱉는 것만 같았다.

     

    중요한 건 우리 부부는 꿈이 있었기에 둘 다 직장을 관두고 창업을 시작했다. 일이 즐거웠고 열정이 가득해 늘 신나게 일을 했었다.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사업 현황을 살펴보며 심장이 두근거렸고 출근길은 마치 애인을 만나러 나가는 것처럼 설레었다. 그리고 시부모에게도 이런 우리의 마음가짐에 관해서 늘 설명을 해왔다. 그런데 매일 아침 출근길에 굳이 흐느껴 우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생계도 생계지만 그 보다 우리는 젊었기에 목표를 향해서 바쁘게 뛰었고 하루 일과가 너무 많아서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괴롭지 않았다.

     

    이즈음 아이도 걱정되고, 시부모님 불안도 덜어드릴 겸 조선족 입주 베이비시터 이모님을 채용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이모님이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딸기(딸 아명) 할머니(시어머니)는 왜 그렇게 벌건 대낮에 친구분들에게 전화해서 딸기 엄마(나)흉을 볼까요?”

    “어머니가 제 흉을 본다고요? 뭐라고 흉을 보시는데요?”

    사실 그 이모님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하기 힘들어 난 더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

    “남자아이들처럼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 놓는다, 애를 전혀 볼 줄 모른다, 여자가 아니라 상남자다… 뭐, 이런 얘기를 뭣 하러 친구분들에게 할까요?

    “그냥 내가 맘에 안 드나 보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하하.”

     

    시어머니가 아침에는 내 손을 잡고 고생한다며 우시고 낮에는 친구분에게 전화를 하시며 내 흉을 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도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왠지 매일 낮에  내가 부재할 때는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인간인지라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 만족을 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친구분들하고 수다를 떠시는 와중에 나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 안 가는 부분은 바로 아침에 보여주시는 ‘위로’와 ‘눈물’이었다.

     

    ‘차라리 아침에 방에서 잠이나 더 주무시지, 왜 날 배웅한다며 흐느껴 우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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