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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한 시어머니와 유난스러운 며느리 (2화)
    연재글 2023. 12. 15. 12:38

    시어머니는 아들만 나타나면 중증 환자가 된다?

     

     

    나는 결혼 후 10년간 시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어머니는 남편과 시아버지만 나타나면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셨다. 평상시  나오는 목소리에서

    고통이 가득한 환자의 신음소리로 바뀌는 것이다.

     

    한 번은 우리가 복도식 아파트 살 때 일이었다.

     

    여름이라 너무 더워서 어머니는 선풍기를 틀어도 전기세가 많이 나간다며 돈이 아깝다고 밤에는 창문을 열고 지내셨다.

    당시 우리 집 가세가 기울 때라 에어컨은 있지만 실외기를 설치 못해서 선풍기로만 지내던 때였다.

     

    아파트 복도 현관문 왼쪽 창문이 어머니 방인데 여름에 어머니는 늘 하던대로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셨다.

    초인종 누르기 전에 창문틈 사이로 어머님이 독서를 하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 등이 보이곤했다.

     평온한 모습이다. 

    어머니 저 왔어요!”라고 외친다. 방에서 어머니가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주신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평화롭게 독서를 하고 계신 분이 왜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방문에 기대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시는가?

     

    “흑흑흑… 와… 왔니?”

    어머니,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흑흑흑… 아니다…”

    어머니! 왜 우세요? 말씀을 제대로 해 보세요!”

    “아니다… 아악… 다리가 아파서…아… 허리가 아파서아아아..”

    어머니! 병원 가셔야 돼요? 말씀 좀 해 보세요!”

     

    어머니는 거의 응급실 실려가기 직전의 환자처럼, 사자에 물린 한 마리 꽃사슴의 외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풀썩 쓰러지신다. 우리가 내일 들어왔다면 지금 쓰러지신 이 순간, 보시던 책을 정상적으로 잘 마무리하고 일상을 무탈하게 보내고 계실 어머니가 남편만 나타나면 쓰러지신다.

     

    나는 왜 반복적으로 그러시는지 이유를 몰라서 짜증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방금 아무렇지도 않게 책을 읽고 계신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들어갔는데 1초도 안 지나 중증환자로 변한 어머니를 목도하니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새벽에 나가 하루 종일 몸을 쓰며 고된 노동을 하고 귀가했을 때 매일 밤 현관문 앞에서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어머니가 도대체 왜 이러 실까? 남편과 여러 가지 원인을 유추해보곤 했다.

    아기를 돌보는 베이비시터랑 같이 있었지만 사실 어머니는 그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위생에 취약한 이모님을 관리하다고 반나절이라도 지켜보는 것이 스트레스일 수 있다.

    가정에서나 회사에서나 사람 관리는 어려운 법이고 친할머니로서 아예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퇴근길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치킨과 카페 라테’를 사 가지고 들어가 어머니의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드리려고 노력을 했다.

     

    식당과 사업을 병행 하면서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선 몸 쓰는 일을 해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사무직에 비해 덜하더라도 체력소진이 심각하기 때문에 집에 도착해서 물 한 잔 떠다 먹기도 힘들어 목이 말라도 침을 삼키며 그냥 잘 때가 많았다.

    나도 10년간 이 일을 해왔지만 장기간 이 일을 한다는 것은 고행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어머니는 거의 매일 아니 1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가 퇴근하고 밤 10시나 11경 들어오면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우울하고, 슬프고, 화나고, 아프고,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을...

     

    그런 지나치게 우울한 모습들을 매일 반복적으로 보면 몸이 파김치가 돼서 들어온 우리는, 순간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해 볼 만큼 마음이 고통스럽고 빠르게 우울해진다. 어쩔 때는 다 같이 죽고 싶은 심정이다. 다 같이 차를 타고 벼랑까지 몰고 가 그냥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끝을 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진다.

     

    사실 남편은 내가 시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화를 미친 듯이 내면 나에게 '다 같이 죽어버리자!'고 지금까지 10번 정도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맥주병을 입에 물고 남편에게 묻는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당신 엄마 때문에 나와 내 아이들이 왜 죽어야 되냐'라고 말하면

    남편은 '나의 어머니는 살리고 그냥 우리 가족만 죽자'라고 되풀이 한다.

    난 '시어머니 한 명 때문에 남편 죽고, 나 죽고, 우리 죄 없는 아이들 죽는 것이 억울하지 않겠냐'라고 묻는다.

    그러면 '내 편'인 남편은 말한다.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해… 내가 우리 엄마를 죽일 수는 없잖아... 그런데 우리 가족은 나 없으면 이 세상 살기 힘들잖아. 다 같이 죽어야  다 같이 같은 곳에 가겠지.. 그게 천국이든 지옥이든...'

     

    결혼 생활 내내 어머니 한 분 때문에 정신적으로 멀쩡한 나와 우리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은 싸우면서 서로 죽자고 달려들었다.

     

    이 게임은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1퍼센트도 동의를 할 수 없었다. 가정에 분란의 씨앗을 던진 사람은 어머니다. 당신만 거처를 옮기거나 우리 가족이 그녀를 피해서 어디로나 떠나면 된다. ‘가화만사성인데 가정이 이 모양이니  사업조차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둘 다 해체될 지경에 생계까지 위협을 받으니 분가할 돈은 언감생심 생각조차 불가했다.

     

    시모의 꾀병은 가정 내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어느 한의사 방송인이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집에서 어머니의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서  노인성 '지병'을 더 악화된 것처럼  포장하여 '이용'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그 신음소리가 효자인 아들의 마음을 건드려 일말의 이익을 취할 수 있겠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진솔함과는 거리가 먼 그저 '위선자의  앓는 소리'일 뿐이다.

     

    아들과의 관계에서 어머니는 늘 중증환자요, 불쌍한 어린 양이다.

    '펜'보다 강했던 어머니의 신음소리가 추억이 될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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